그리움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몇 시간 뿐이었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정말 어렵게 갔다 온 관측회였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한 일이다.
"왁자지껄"한 걸 싫어하는 내가 별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기 위해 관측회를 갔으니까. . . . . .
총관측회가 아니고 관측회였다면 아마 그냥 포기했을 거다.)
여하튼 참 오랫만의 만남을 위해서 총관측회를 갔다 왔다.
처음 강의 마치고 출발한 것이 9시 30분
아이들에게 졸라서 10분이나 당긴 것인데
지하철 갈아타고 어쩌고 하다 보니
10시 30분 기차를 놓쳐 버렸었다.
나중에 혜문이가 했던 말처럼 17번 버스를 탈 걸 그랬다.
(무엇인가 모르면 항상 이렇게 고생이다.)
대략 난감 ㅜㅜ이었다.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랐었다.
한참이나 연락도 하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던 은주
(이전에 이런 저런 글을 써 준 기억이 났다. 시간이 흘러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
그저 옆에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는데
은주가 계속 공부하도록 많은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갈 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한정된다."는 사실이
날 참 많이 힘들게 하고 또 "어떠한 말을 하나 하기가 주저된다."라는 생각이
스스로 느끼는 대략 "나이가 들어감"의 징조라고나 할까. . . . . .)
취업을 하게 된 동기 일하는 것은 할 만한지
결혼은 언제 할건지 궁금했고(결국 답은 아직인 것 같지만. . . . .그래도 머지 않아)
우연히 지나다 지하철 역 아래서 만났던 93 병오 형에게 이런 저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 났다.
"형 5월달 총관때 봐요."
가끔 [용걸]이와 참 많이 마음이 통하는 비슷한 말과 이야기를 해던 기억에
그 빈자리가 아쉽다는 생각도 스치고
지난 번 총 관측회 때(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홍빈]이 차를 타고 갔을 그때)
벌써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99 은미, 영선이가 왠지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는
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도 다시금 떠올랐다.
먼저 가는 후발대에 "길범"이 이름도 머리속에 떠올랐다.
무슨 생각인지 가평 역에서 기차 타기 전에 한 곳에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1차 합격을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전에 올 해 까지인가 안 되면
"군 법무관" 시험을 볼거라고 고시라는 거 기한을 정하고 할 거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95 동찬 후배와 약속하고서는 기차를 놓쳐버렸고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동찬 후배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게 누군인지. . . .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량리 역에 택시를 타고 갔다.
기사 아저씨께서 가평까지 한 "25000원" 하신다던데
전에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더 늦은 시간 표를 본 것 같아 그냥 역에 갔었다.
결국 표가 없다는 말에 돌아 서다가
그냥 지르기로 했다. "마~ 그냥 택시 타자!!!)
나름대로 가평 가는 택시는 참 스릴 있고 재미 있었다.
그러면서도 택시 유리 너머로 하늘을 보곤 했다.
아무리 사람 보러 간다지만 그래도 좀 맑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 . . . .
도착하자 마자 머리 속에 있던 사람들 하나 하나 찾았더랬다.
근래의 소식도 묻고 혹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물었다.
뭐라고 할까 이제서야 제법 현실에 눈을 돌리고
다른 이들의 고민이 (적절한 나이가 되면) 서로 비슷하게 된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애정이랄까 뭐 그런 것 같다.
그나 저나 정말 이번 총관측회는 내가 가 본 관측회중 가장 "럭셔뤼"한 관측회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의 "아쉬움" 때문에 동기가 이런 저런 말도 했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참 많이 묻어 났다.
02 임원진들 정말 수고 많았다는 말 여기서 전하고 싶고
나중에 02가 한참 위의 선배가 되어 찾아 올 때
거기에 "그리움"이 배어 날 수 있는 관계를
후배들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왠지 남았다.
- 이 의미는 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또 다시 나만의 "주관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싶은 말은
나한테 있어 "별빛"은 언제 돌아가도 나를 반겨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래서 자주 보지는 못해도 "그리움"이 묻어나고
그것만으로도 참 힘이 되는 동아리라는 그 말 한마디
그 말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글을 썼다.
나중에 연말에 송년회 쯤에야 사람들을 볼 것 같다.
그때 쯤엔 내가 원하는 궤도에 진입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별빛은 그대로일 거라 믿는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정말 어렵게 갔다 온 관측회였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한 일이다.
"왁자지껄"한 걸 싫어하는 내가 별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기 위해 관측회를 갔으니까. . . . . .
총관측회가 아니고 관측회였다면 아마 그냥 포기했을 거다.)
여하튼 참 오랫만의 만남을 위해서 총관측회를 갔다 왔다.
처음 강의 마치고 출발한 것이 9시 30분
아이들에게 졸라서 10분이나 당긴 것인데
지하철 갈아타고 어쩌고 하다 보니
10시 30분 기차를 놓쳐 버렸었다.
나중에 혜문이가 했던 말처럼 17번 버스를 탈 걸 그랬다.
(무엇인가 모르면 항상 이렇게 고생이다.)
대략 난감 ㅜㅜ이었다.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랐었다.
한참이나 연락도 하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던 은주
(이전에 이런 저런 글을 써 준 기억이 났다. 시간이 흘러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
그저 옆에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는데
은주가 계속 공부하도록 많은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갈 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한정된다."는 사실이
날 참 많이 힘들게 하고 또 "어떠한 말을 하나 하기가 주저된다."라는 생각이
스스로 느끼는 대략 "나이가 들어감"의 징조라고나 할까. . . . . .)
취업을 하게 된 동기 일하는 것은 할 만한지
결혼은 언제 할건지 궁금했고(결국 답은 아직인 것 같지만. . . . .그래도 머지 않아)
우연히 지나다 지하철 역 아래서 만났던 93 병오 형에게 이런 저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 났다.
"형 5월달 총관때 봐요."
가끔 [용걸]이와 참 많이 마음이 통하는 비슷한 말과 이야기를 해던 기억에
그 빈자리가 아쉽다는 생각도 스치고
지난 번 총 관측회 때(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홍빈]이 차를 타고 갔을 그때)
벌써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99 은미, 영선이가 왠지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는
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도 다시금 떠올랐다.
먼저 가는 후발대에 "길범"이 이름도 머리속에 떠올랐다.
무슨 생각인지 가평 역에서 기차 타기 전에 한 곳에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1차 합격을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전에 올 해 까지인가 안 되면
"군 법무관" 시험을 볼거라고 고시라는 거 기한을 정하고 할 거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95 동찬 후배와 약속하고서는 기차를 놓쳐버렸고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동찬 후배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게 누군인지. . . .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량리 역에 택시를 타고 갔다.
기사 아저씨께서 가평까지 한 "25000원" 하신다던데
전에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더 늦은 시간 표를 본 것 같아 그냥 역에 갔었다.
결국 표가 없다는 말에 돌아 서다가
그냥 지르기로 했다. "마~ 그냥 택시 타자!!!)
나름대로 가평 가는 택시는 참 스릴 있고 재미 있었다.
그러면서도 택시 유리 너머로 하늘을 보곤 했다.
아무리 사람 보러 간다지만 그래도 좀 맑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 . . . .
도착하자 마자 머리 속에 있던 사람들 하나 하나 찾았더랬다.
근래의 소식도 묻고 혹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물었다.
뭐라고 할까 이제서야 제법 현실에 눈을 돌리고
다른 이들의 고민이 (적절한 나이가 되면) 서로 비슷하게 된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애정이랄까 뭐 그런 것 같다.
그나 저나 정말 이번 총관측회는 내가 가 본 관측회중 가장 "럭셔뤼"한 관측회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의 "아쉬움" 때문에 동기가 이런 저런 말도 했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참 많이 묻어 났다.
02 임원진들 정말 수고 많았다는 말 여기서 전하고 싶고
나중에 02가 한참 위의 선배가 되어 찾아 올 때
거기에 "그리움"이 배어 날 수 있는 관계를
후배들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왠지 남았다.
- 이 의미는 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또 다시 나만의 "주관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싶은 말은
나한테 있어 "별빛"은 언제 돌아가도 나를 반겨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래서 자주 보지는 못해도 "그리움"이 묻어나고
그것만으로도 참 힘이 되는 동아리라는 그 말 한마디
그 말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글을 썼다.
나중에 연말에 송년회 쯤에야 사람들을 볼 것 같다.
그때 쯤엔 내가 원하는 궤도에 진입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별빛은 그대로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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